지금까지 번영을 구가하던 패션산업이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밝혀지면서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래전 귀족들의 옷을 짓던 기술자의 후예들은 각자의 기술력으로 특색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생산된 특별한 소재는 고유의 이름을 갖은 제품이 되었다. 그렇게 패션브랜드가 탄생했고 사람들은 욕망의 대상으로 브랜드를 선택했다. 그런데 소재의 지역적 특이성이 사라지고 합성섬유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의 특별한 기술이 기계의 발전으로 보편화되면서 엄청난 수량의 패션제품이 싼 가격으로 공급되었다. 집 한 채 값이었던 옷 한벌의 가격은 한 끼 식사비 정도로 낮아졌다. 사람들은 의류 제품을 소유하는 중요한 재산에서 몇 번 사용하고 버리는 저렴한 소비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버려진 의류 폐기물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의류 제품 중 합성섬유 비중은 약 70% 정도다. 합성섬유의 원료는 대부분 석유다. 석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의류 제품은 원재료 생산과 제작, 유통에서 탄소를 배출시킨다. 듀폰사가 만든 나일론을 시작으로 석유계 원료로 만든 합성섬유는 패션산업의 최성기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이 석유계 원료가 이제는 패션산업을 존폐의 위기로 몰고 있다. 이대로 패션산업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들 짐작은 하지만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의류 생산을 최소화하고 의류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폐기 후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천연소재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재활용 소재의 사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소비를 극단적인 수준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이미 누리고 있는 풍요를 스스로 버릴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수도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유니폼 같은 똑같은 옷만 입고 살게 될 가능성도 없다. 또한 폐기 후 완전히 분해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일부 제품에서나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중세시대 같이 마와 면으로 만든 옷만 입고 살 수는 없다. 이미 뛰어난 기능성을 갖춘 소재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무겁고 거친 소재에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제품을 재활용된 소재를 사용하여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재활용된 소재만으로 모든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패션 산업은 완전한 순환 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여 폐기된 의류 제품을 원자재로 되돌리고 그것을 사용하여 의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추가적인 석유계 소재 생산을 최소화하고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 중 가장 밝은 패션산업의 미래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 개발이 묘연하다. 사실 의류 폐기물 분류와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는 아직 없다. 아직까지 재활용 소재를 만드는 대부분의 방법은 물리적 재활용 방식이다. 물리적 재활용은 의류폐기물을 잘게 파쇄하고 세척해서 펠릿으로 만들어 제직하는 방법과 고온으로 섬유 폐기물을 녹여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물리적 방식은 재활용 횟수의 제한이 있고 처음 만들어진 소재 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재활용 소재를 의류 제조에 사용하는 것은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추가적인 석유계 소재의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풍요로운 패션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다양한 옷을 시즌마다 즐기고 싶다.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의류의 생산을 줄이고, 현재 패션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할 방법은 없을까?전기의 생산을 석유와 석탄에서 태양열,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바꾼 것처럼 패션산업도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의류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기준이 바뀌어야 하지만 소비자의 의지는 누구의 주도로 바뀔 수 없다. 다만 TPO에 맞춰 옷을 선택하는 것처럼,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기준에 맞춰 패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패션 유통의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의류 제품을 구매할 때부터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몇 번 입고 다시 판매할 옷인지, 끝까지 입고 폐기할 옷인지 구별할 수 있다면 구입하는 방법부터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새로운 유통 형태가 나타나지 않아 소비자의 선택에 한계가 있다.유통업자의 역할은 의류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에서 의류 제품을 수선하고 되팔고 수거하고 폐기, 재활용하는 관리자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새로운 패션 유통이 자리 잡게 되면 소비자는 새로운 선택의 기준에 따라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2024년 2월 8일 뉴욕 패션 위크 퓨마 2025/07/04